백두대간 20구간 화령재 <- 갈령
산행일자:2002년 3월17일, (한등 889차) 해짐:18:43 해짐:06:36
동행자: 회원 명, 대장:하 기 호 011-882-9362
산 행 소 요 시 간 (기록 천호열)
목적지 |
도착 |
출발 |
참고사항 |
시민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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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 |
버스 2대 |
갈령(443M) |
11:30 |
1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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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령 갈림길 |
1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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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재 |
1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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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
12:40 |
1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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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재 |
13:30 |
B팀 하산 | |
봉황산(740.8M) |
1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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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감시초소 |
1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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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재(320M) |
16:05 |
최선두: 15:30 후미 17:00경 |
후미도 날랐다. 작성자 : 김 신 인
갈령! 출발 전 오랜만에 숙경씨의 카메라에 갈령 포지석을 배경으로 모델이 됐다. 이 때 아니면 이 여인을 하루 종일 만날 수가 없다. 보고서에 올릴 사진을 정식으로 부탁하고 11:35 산행을 시작 12:15 갈령 삼거리, 저번 산행에 실수로 선두에 서서 길을 잘못들은 일행을 따라가고, 형제봉에서 추락 부상하여 지금까지 어깨가 났질 않은 곳이다. 12:40 천재봉 앞에서 회장님, 박재우님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회장님이 "어! 심이사가 왜이리 늦노?" 걱정이 되어서 Back 거의 갈령 삼거리까지 갔다고 한다. 무서운 책임감. 곧 심이사는 봉오리를 생략하고 우회하여 못재로 간 것을 알았다.
또 숨이 막힌다. 개재(14:15) B팀?, A팀? 갈등하다가 버스를 보니 다리에 힘이 빠진다. 또 꾀(?)가 난 것이다. "그래 원래 나는 약한 놈이야. 나를 알아야지." B팀이 되었다.
박재우 원장님. 저번 산행에 오른쪽 허벅지에 근육파열상을 입어 산행이 불가능 한 것을 억지로 나왔다고 한다. 이것에 무리가 온 것이다. 다리를 절면서 5시간 30여분을 기어이 완주하셨다. 회워님 들의 박수를 받으며, 의지의 완주였다. 뒤탈이 없어야 하는데 ......
최선두는 산행시간 6:55 산행거리 13Km를 3시간 55분 봉황 처름 날랐다. 후미도 5시간 30분정도 후미도 날랐다.
초봄 속의 포근한 봉황산
작성자 : 천호열
백두대간 28차 갈령(葛嶺 443m)-갈령삼거리-못재-510봉-비재-봉황산(鳳凰山 740m)- 산불감시초소-화령재(320m)
날씨 : 황사 와 바람이 많이 불었음.
북에서 남으로 역 산행을 함.
고속도로 변의 봄기운이 완연한 개나리꽃과 산 능선 위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을 뒤로 한 채 버스는 상주로 향하여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다 구미에서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진입하여 시원하게 달린다.
이제 봄이 완연하다는 생각을 하며 49번 국도상의(괴산, 화북, 문장대 방향 가는 길) 갈령 도착 시간은 11시32분이었다. 작년 9월16일 새벽 03시경 찬 공기를 맞으며 도착하였던 곳으로 이제 다시 와서 확인하여 보니 갈령 표시석 뒷면에 갈령의 내력이 적혀 있었으나 확인하지 못한 채 그 옆에 이정표의 “형제봉 1시간30분, 대궐터산 30분”이라 씌어 있는 이정표를 확인하면서 인원 점검 후 11시39분 산불조심 허수아비를 줄로 세워 놓은 재미있는 모습을 보면서 옆을 지나 갈령 표지석 옆으로 고개를 올라 초입을 한다.
오르는 길은 제법 경사 길로 간혹 암릉이 있었고 참호와 헬기장을 지나 땀을 흘리며 12시00분 685봉을 올라서 7분 후 갈령 삼거리에 도착한다. 갈령 삼거리는 지난번 산행시 북서쪽 형제봉을 보고 가야 하나 어둠 속에서 남동쪽으로 잘못 내려가 암릉 길을 다시 돌아서 올라왔던 곳으로 이번이 세 번째 오게 되는 곳이다. 오늘 확인을 하여 보니 표지기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그 밑에 갈령 삼거리라고 포항 셀파 가이드에서 나무 표지판을 달아 놓았고 구조 요청 점을 알리는 표지판도 세워 놓았다.
갈령 삼거리에서 왼쪽 남동쪽으로 암릉 길 우회로를 내려서는 길은 제법 경사가 급하였다. 지난번 암릉 길을 어둠 속에서 돌아서 올라온 곳에 12시11분 도착하여 표지기가 빼 곡하게 달려 있는 것을 보면서 남동쪽으로 계속 내려선다. 지도상의 암릉을 표시하여 놓은 구간이라서 그런지 능선에는 암릉들이 계속하여 연결되어 있었다. 암릉 길을 내려가면서 목포에서 온 꿀벌 산악회 팀들을 만난다. 오래만 에 대간 길에서 다른 산악인들을 만나니 반가워서 서로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12시30분 묘 1기와 헬기장으로 되어 있는 봉을 지나서 내려서니 5분 후 억새풀로 덮여 있는 못재를 지나면서 못재의 전설을 이야기한다. 못재는 “비재와 갈령 삼거리 사이 백두대간 상에 있는 고원 습지로, 넓이는 500∼600평 정도 되고, 장마철이 아니면 물이 거의 없다. 못재에는 전설이 흐르고 있다.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대궐터산에 성을 쌓고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황충 장군과 싸울 때마다 연전연승하자 황충 장군은 견훤이 이기는 비법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부하를 염탐시켰다. 그 결과 견훤이 이곳 못제에서 목욕만 하면 없던 힘도 저절로 생겨 승승장구한다는 사실과 견훤이 지렁이 자손으로 지렁이는 소금물에 약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황충 장군은 부하를 시켜 못재에 소금 300석을 몰래 풀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견훤은 못재에서 목욕을 하고 난 뒤 힘을 잃고 말았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황충 장군이 견훤에게 공격을 퍼부은 결과 승리를 얻어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로 보아 당시 물이 풍부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간다.
6분 후 전나무 숲을 지나 제법 낙엽이 많이 쌓인 평평한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자고 하는 것을 뒤로 한 채 내리막길을 내려서 저 멀리 구병산이 보이는 암릉 길의 평평한 곳에서 12시40분 점심식사를 하고 12시51분 출발한다. 능선 길을 내려서는 왼쪽 편에는 계속하여 49번 국도와 마을이 보여 49번 국도와 평행하게 대간길이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49번 국도 너머 바위 암릉으로 되어 있는 대궐터산 과 능선 오른쪽편의 구병산이 멋지게 위용을 떨치고 있고 우리가 지나온 길 쪽에는 바위 암릉들의 모습이 보였다.
산길은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었고 봄 날씨를 시샘이라도 하듯 황사가 뿌옇게 끼여 있었다. 13시05분 지금까지 내리막 능선 길에서 잠시 오르막길을 오르며 숨을 헐떡이며 올라서 봉우리 두개를 숨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하여 다시 오르막에 올라서 10분 후 표지기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510m봉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서 2분 후 작은 공터 위에 무덤 1기가 있는 곳을 지나 13시30분 쇠계단을 내려서 비재에 도착한다.
비재는 새가 날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비조(飛鳥)재, 비조령이라 불렸으나, 최근 들어 비재라고 이름이 굳혀졌다는 기록을 첨언하며 상주시 외서면의 동관과 화남면을 연결하는 길로서 베스트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으며 정기사께서 천천히 가라는 인사말을 건넨다.
비재를 바로 올라서 7분 후 오르막 봉(415m)에 도착하니 북동쪽으로 대궐터산 과 극락정사가 있는 암릉 산이 보였으며 여기부터 능선 좌우에 반짝거리는 줄이 선답자 들이 적은 기록에도 있듯이 지금도 송이버섯 채취를 못하도록 쳐 놓은 것을 볼 수 있으나 이 줄도 이제는 모두 중간 중간 떨어진 채로 계속 능선을 따라 있었다. 5분 후 지도상 458봉 바로 밑 묘 1기가 있는 곳을 지나 남쪽 방향으로 내릴락 오르락하여 13시50분 봉우리(475m)에서 저 아래 임도와 휴게소가 보인다. 이제부터 점차 고도가 높아지면서 북동쪽의 정면으로 보이던 대궐터산이 북쪽으로 보이며, 산의 옆모습과 극락정사 절이 보인다.
계속 고도는 서서히 높아지고 있으며 봉을 서너 개 지나 14시15분고도 655m봉에서 방향을 남동쪽으로 선회하여 6분 후 오른쪽 갈림길이 있는 것을 확인하며 계속 방향을 남동쪽으로 따라 가는데 능선 길 앞쪽 오른쪽 방향에 도로와 마을이 보인다.
14시35분 봉황산 정상 못 미쳐 암릉길 오른쪽 우회로를 내려서는 길에서 부부가 함께 막대기를 짚고 산행을 하고 가는 것을 보면서 반갑다고 인사를 건넨다. 다시 오르막에 올라서 14시47분 봉황산 정상(740.8m)에 도착한다.
봉황산(鳳凰山) 정상은 상주시청 산악회에서 백화산과 같이 아담하게 표시석을 “白頭大簡 鳳凰山 一九九七. 六. 一. 740.8m”라고 세워 놓았으며 그 옆의 마루금을 힘차게 밟아 본다. 그 아래 나무 숲 속에 백두대간 봉황산 표시 막대봉을 누군가 던져버렸는지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을 하여 본다.
정상을 내려서는 길 능선 오른쪽의 저수지와 학교, 마을이 보이는 것을 확인하며 편안하게 능선 길을 따라 가다 15시15분 산불 감시 초소에 도착한다. 산불 감시 초소에는 산불지기 어르신 한 분이 앉아 계셔 수고하신다고 인사를 건넨다. 초소 밑에는 개 한 마리가 짖고 있었다. 초소에서는 신봉리 마을의 모습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계속하여 능선 내리막길을 편안하게 낙엽을 밟으면서 진행하는데 묘가 간간히 보였고 15시39분 묘1기가 있는 사거리 안부에서 능선 오른쪽 마을이 있는 길로 내려서 계속 간다. 6분 후 묘 1기 와 전나무 숲을 지나 능선 좌우 마을이 보이는 곳을 지나 15시56분 묘 3기가 있는 곳을 지나 내려서니 25번 국도와 그 옆의 49번 국도로 갈라지는 삼거리 포장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내려서기 전 지난번 화령재를 내려서기 전 달아 놓은 표지판의 서용희(011-332-3365)라는 사람이 매직으로 적어 도로 왼쪽으로 연결 구간이 있다는 표지판과나 상주시 화서면에서 백두대간 등산로를 상세하게 안내하여 놓은 표지판을 지나 창고 같은 것이 있는 밭을 좌측에 두고 아스팔트 도로의 49번 국도 상에 내려선다.
도로상에는 선산, 상주로 가는 25번 국도와 괴산, 화북, 문장대를 가는 49번 국도를 안내하는 표지판과 신봉2리 마을 표지석과 좌회전시 "문장대 관광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확인하며 아스팔트 왼쪽 편을 따라 화령재쪽으로 걸어간다. 차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가끔 보였으며 잠시 도로 옆 숲길로 올라서 다시 아스팔트 도로로 내려서 16시05분 화령재에 도착한다.
이 곳 산행로는 아직까지 봄기운이 완연하지는 않았으나 나뭇가지에는 이제 남녘의 초봄과 같이 움이 돋아 있었다. 25번 국도에서 화령재가는 길가에는 쑥이 많이 피어 있었고, 회원님 한분은 냉이를 많이 캐어 오셨다.
화령재에 도착하니 서울서 온 산악회 팀 버스 한대와 한등의 베스트 관광버스 두 대 옆에서 모두들 산행 뒤풀이를 멋지게 하고 있었다. 이제 백두대간을 시작한지 1년여가 넘어가니 모두들 모르는 사람이 없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정다운 시간을 가진다. 오늘이 구간을 연결하면 지리산에서 도래기재까지 완전히 연결이 되었으며 다음 구간부터는 태백산을 종주하고 나면 설악산을 향하여 계속 북진을 할 것이다. 지도를 연결하여 보니 지금까지 지나온 구간들이 작아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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